독서망양: 책을 읽고 양을 잃다 I

library awards꿈만 꾸던 고교시절 어떤 꿈꾸던 강연자가 말했습니다. 대학교 때 이천 권을 읽으면 무엇이든 성공한다고.

전 그 꿈을 꾸었습니다.

느리고 낮은 노력으로 늦게 대학에 도착해 3년 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2,300권을 대출해 결국 그 꿈을 현실에서 이뤘습니다. 10년만에.

물론 그 때 그 강연자가 말한 성공이 무엇일까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법은 배운 것 같고,
그 많은 책의 페이지를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고,
공부를 잘 하진 못해도, 무엇을 공부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러는 왜 2,300권을 읽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한편 누군가는 어떻게 2,300권을 읽었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목적과 동기를 물어보는 것이고 후자는 방법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단순하게 대답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냥 책이 좋아서 읽었고 책 읽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정을 극히 제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목적에 대한 대답은 열정이고 방법에 대한 대답은 선택과 배제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비법, 영웅적인 동기에 매혹당하곤 하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비법과 동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동기, 평범한 노력, 그런 것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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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y Awards 2016 – 장서이용부문 시상식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만 살아낼 수 있다면 일상을 버틸 수 없었겠죠. 남들에게 말하기에 자랑스럽고 화려한 악세사리를 장착하지 않아도 삶은 의미있습니다. 거대한 느티나무도 처음에는 볼품없는 씨앗이었는데 매년 비와 눈을 이겨내고 살아내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나는 역사에 남는 만년송이 되겠어! 하고 마음먹는 것은 아니듯 말이죠. 특별한 비법, 영웅적인 동기가 없어도 2,300권 읽어낼 수 있다고 제가 여러분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품었던 꿈을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누군가는 저를 넘을 수 있는 사람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

앞선 두 가지 질문에는 결정적인 질문 하나가 빠져있습니다. ‘왜’라는 목적을 물어보든, ‘어떻게’라는 방법을 물어보든 저라는 한 사람이 한 행위를 의심하고 질문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무슨 결과를 내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읽고 말았는지? 독서의 효과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천재가 되었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많은 책을 밤새서 읽다가 눈과 체력만 나빠졌습니다.

우선, 배워서 남 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정보와 기회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울러,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학부 때 범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은 경험은 제가 앞으로 무엇이 되든간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물론 솔직히 말해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읽었던 내용은 당연히 기억이 안 납니다. 제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물론 출판사의 편집오류를 잡아내고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 오타수정을 요청한 적이 있을 정도로 꼼꼼이 읽었습니다. 한 권 한 권을 대충 읽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습관을 길렀고,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공부하는 태도를 키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해 지적생산 프로세스를 자신에게 구축했습니다.

지적생산 프로세스란 무엇인가? 그 경험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2,300권을 어떻게 읽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답변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2,300권을 읽고 느낀 생각과 유용한 정보가 무엇인지 실제적인 노하우를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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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매커니즘으로 독서생활을 디자인하면 주기적으로 빠르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 시간의 반복
1) 특정요일에 반복적으로 도서정보 사이트에 들어간다. 요즘 무슨 책이 핫한지 무슨 책이 번역되어나왔는지 최신 정보를 습득하면 독서에 도움 됩니다. 다른 독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했는지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면 자신만의 안목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이트가 있습니다.
- 로쟈의 저공비행 알라딘 블로그
- 예스이십사 추천도서의 미디어추천
- 아마존 리뷰
- 뉴욕타임즈 북 리뷰
- 오프라인 서가 평대 (교보, 반디-주제별분류가 좋다, 영풍-인문서적이 좋다 등)

2) 특정요일에 반복적으로 밤을 새서 책을 읽는다.
- 책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논리가 촘촘하게 엮인 책이 있습니다. 한 호흡에 다 읽을 수 없습니다. 이런 책은 목차를 보고 두 세 번 전체적으로 흝어봐서 눈으로 익힌 다음 하루에 5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 온몸으로 밀어내면서 읽어야 합니다. 교과서, 고전 등이 이와 같습니다.

3) 특정요일에 반복적으로 읽은 책을 정리한다.
- 읽는 것보다 읽은 것을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을 해보는 것인데,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인드맵이나 목차를 재구성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표현이 좋은 글들은 표현을 다시 한 번 적어보면 문체의 울림을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open blank no lined notebook on hand.

· 공간의 반복
1) 특정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비슷한 류의 책을 읽는다.
- 저는 문학이나 수필류는 카페에서 잘 읽히고, 과학이나 경제책은 중앙도서관에서, 역사책은 2층 역사책 코너에서 잘 읽히곤 했습니다. 무거운 책은 5층 열람실에서 잘 읽혔습니다. 몸이 장소를 기억합니다. 훈련이 되면 그 장소에서 그 책은 잘 읽힙니다.

2) 데드라인을 설정합니다. 신간을 신청하고 책이 도착하면 예약을 걸고 예약도서코너에서 책을 찾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그럼 예약도서 반납일 전까지 읽기 위해서 어떻게든 읽게 됩니다. 중요한 내용은 어디에 있는지 저자가 핵심을 어디서 이야기했는지 한 눈에 파악하고 추려서 읽는 법이 필요합니다. 이는 다음 연재 때 자세하게 예를 들어 서술하겠습니다.

3) “와! 이건 사야해!” 류의 책이 있고 “와! 이건 봐야해!” 류의 책이 있습니다. “와! 이건 사야해”는 소장용 책입니다.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와! 이건 봐야해!”는 시의성 있는 책입니다. 2017년 트렌드, 대통령 선거 시즌 등 그 당시에 나와서 빠르게 소비되는 책입니다. 두 가지를 구분해서 봐야합니다.

간략하게 시간과 공간을 중심으로 프로세스를 나누어봤습니다.

 

다음 연재에는 더 풍부한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하신 수서과 선생님들과 예약도서코너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연세대 학술정보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서 선생님들의 노고 덕분에 지적으로 큰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서지민 학생 (불어불문학과, Library Awards 2016 장서이용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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