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인이 쓰는 글 – 아름다움을 향한 두 천재의 숨막히는 질주, 위플래시(Whiplash)

연세인이 쓰는 글 – 아름다움을 향한 두 천재의 숨막히는 질주 , 위플래시(Whiplash)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아름다운 자극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아름다운 것들은 사람들의 감각과 감정을 매료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아름다운 풍경, 그림, 또는 음악 등을 선호하며 때로는 이것들을 강렬하게 욕망한다. 때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잘못된 맹신, 도덕적 윤리까지도 무시한 아름다움의 추구 등이 이 강렬한 욕망과 결부되며 외모지상주의, 성형 중독 등의 문제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 자체의 선함과 악함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이것이 어떤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에 있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래적인 욕망이라는 점은 틀림없을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 속 세상에 드러난 지배적인 아름다움은 음악의 아름다움이다. 숨막히는 속도로 몰아붙이는 드럼 소리는 우리의 심장까지 빠른 속도로 뛰게 하고, 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풍성한 화음은 10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우리를 지루할 틈 없이 긴장하게 하며, 때로는 황홀하게 한다. 여기, 바로 이런 음악의 아름다움에 눈이 먼 두 남자가 있다. 바로 네이먼과 플레처이다.

네이먼은 찌질하다. 기껏 미국 최고의 음악 대학인 셰이퍼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보조 드러머로 남의 눈치를 보며 악보나 넘겨주는 중이다.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평범하고, 심지어는 소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네이먼의 마음 속에는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남다른 욕망이 잠재되어 있다. 바로 세계적인 드러머 ‘찰리 파커’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세계 최고의 뮤지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광기 어리고 맹목적인 욕망은 숫기 없는 청년으로 하여금 플래처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버텨내게 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도 드럼스틱을 쥐게 하고, 34세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도록 한다.

플래처는 가혹하다. 그의 가혹함은 완벽주의로부터 비롯된다. 자신의 비트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연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폭력도, 성적인 모욕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의 최고의 재즈 밴드, 그 밴드에서 지휘자라는 최고의 지위를 맡고 있으며, 학생들의 연주를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플래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냉혹하게만 보이는 플레처의 내면에도 네이먼만큼이나 강력하게 끓고 있는 욕망이 있다. 바로 제 2의 찰리 파커를 만들어 내고 싶은 욕망이다.

이것은 단순히 훌륭한 제자를 양성하고 싶은 뭇 선생님들의 욕망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의 욕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습작의 파괴를 거쳐 갈라테이아라는 피조물을 만들어 낸다. 플레처도 이와 같이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구현해 줄 갈라테이아가 필요했던 것이고, ‘찰리 파커’와 같은 천재적 뮤지션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resize_Library on_Image

네이먼과 플레처는 사제지간이지만 우리가 으레 연상하는 믿음으로 가득 찬 따스한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그 둘의 사이에는 갖가지 악연으로 얽힌 팽팽한 긴장감과 흉포한 증오가 살아 숨쉰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가진 공통의 욕망은 완벽한 화학작용을 이끌어내는데, 바로 음악의 아름다움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다.

찰리 파커가 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찰리 파커를 만들어 내고 싶은 욕망, 이 두 가지 욕망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 위에서 맹렬히 부딪히며 황홀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서로의 광기와 욕망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유일무이한 파트너인 두 사람이 JVC페스티벌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환상의 호흡은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매력적인 관계성을 지닌 두 천재, 플래처의 채찍질과 네이먼의 질주에 정신없이 발을 맞춰가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아름다움에 정신을 뺏기는 동안, 여기에는 우리가 간과한 몇가지 도덕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면서까지 꿈을 성취하고자 하는 네이먼의 삶의 태도는 과연 옳은가? 단 하나의 갈라테이아, 단 하나의 음악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희생된 플레처의 수많은 습작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폭력적인 교수법이 행해져도 좋은가? 아름다움을 위해서 선이 희생되어도 좋은가? 아니, 애초에 아름다움과 선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이 영화는 아름다운가? 그렇다. 멋진 음악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흥미로운 서사는 우리의 감각과 감정에 짜릿하고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네이먼과 플래처라는 두 인간의 욕망을 거쳐 스크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순간, 이 영화는 곤란한 질문에 부딪힌다. 이 영화는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이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선한 것이 아름답지 않기도 하며 아름다운 것이 반드시 선하지 않기도 하고,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선과 악,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이 영화의 매커니즘은 확실히 선하며, 동시에 아름답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과 1학년
권진송

————————————————————————————————————————————————————————-
이 글은 연세인의 기고를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학술정보원에서는 뉴스레터에 실릴 연세인의 글을 받고 있습니다. 도서, 영화는 물론이고 도서관에 담긴 여러분의 추억과 나만의 정보조사 노하우까지! 도서관과 관련된 주제라면 연세인 누구나 기고할 수 있으니 자유롭게 글을 보내주세요.
보내실 곳은 jiha@yonsei.ac.kr 이며 최소 분량은 A4  한 페이지분량의 텍스트와 이미지파일입니다.  뉴스레터에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One comment on “연세인이 쓰는 글 – 아름다움을 향한 두 천재의 숨막히는 질주, 위플래시(Whiplash)

  1. 익명 on said:

    영화의 치열한 주제 의식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HTML tags are not allow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