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 추천영화 (2016, 4월)

작은 스탠드 불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방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나지막한 DJ의 목소리가 밤의 공기와 어둠을 천천히 채워가는 조용한 새벽. 마음 속에 일렁이는 기억과 생각의 조각들을 갈색의 종이가 서걱거리는 일기장 위에 한 방울 두 방울 물감이 번져가듯 유유히 풀어놓다 보면, 나의 작은 방은 아파트 건물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하늘에서 바다까지, 호수에서 숲까지 자유롭게 날아 부유하는 마법의 공간이 되곤 했죠. 깜깜한 어둠 속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베개 위에 팔을 얹고 엎드려, 가만히 숨죽이고 조그만 노트북 화면 속에 영화가 초대하는 세계 속으로 정신 없이 빠져들 때에도 역시 그러하듯이.

시를 짓고 노래를 듣고 노래를 하고 책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일직선으로 펼쳐지는 삼차원의 현실 한 가운데,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음표와 활자와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이야기와 선율로 탑을 쌓고 궁전을 세우는 우리들. 때때로,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우린 그런 마법의 공간과 시간들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의 모래바람에 닳고 늙어가는 나의 육체 깊숙한 곳 어딘가 묻혀있던 낡은 주전자를 꺼내어, 사랑하는 이를 어루만지는 손길마냥 부드럽게 문지르고 나지막이 나만의 언어들을 속삭여 갇혀있던 나의 ‘지니’를 불러내 마법양탄자를 타고 대륙과 대양을 넘나드는 여행을 마음껏 누릴 시간들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봄이 무르익어갑니다. 꽃내음이 살랑대는 저녁 무렵 이유 모를 무력감과 회의감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여러분을 덮쳐올 때, 잠시 다른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게 해줄 이야기들을 데리고서 연시가 여러분께 찾아왔습니다.

외로운 인간들의 서툰 관계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 트랙으로 섬세하고 따뜻하게 엮어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사랑의 설렘과 아픔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과 감각적인 화술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물들인 작품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 한국 멜로의 수작들을 남겨온 허진호 감독의 또 다른 사랑에 관한 이야기, <행복>.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영국 BBC 드라마 <셜록> 시리즈의 히어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역사 속의 실제 인물이자 불행한 천재였던 앨런 튜링으로 분한 깊이 있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지평선 너머 온 세상을 환히 물들이는 햇살처럼 당신의 가슴 속에 영원히 아름답게 남을 소년 소녀의 이야기 <플립>. 달콤한 이야기 너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슬픔과 깊이를 발견해내게 하는 영화 <세이빙 Mr.뱅크스>. 그 외 예술가의 천재성과 고통, 아름다움, 모험,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감정에 대한 사유로 빠져들 기회를 선사해줄 다른 이야기들도 역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You look like a movie

You look like a song

My god this reminds me of when we were young

Let me photograph you in this light

In case it is the last time

Adele, “When we were young” 中

 

사람의 기억은 살아있는 시간동안 무한정으로 쌓여가는데, 그동안 만났던 당신만의 향기로 얼룩진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 남아있습니다. 한 줄기 빛과 바람 되어 떠다니던 파편의 조각들이 문득 폐 속을 꽉 채우는 공기 속에 깃들어 오는 순간이면 가슴이 시리도록 저린 행복감에 젖어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곤 합니다. 나의 마음은 늘 새로운 선율과 이야기를 갈구하여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죽는 날까지 이 끝 모를 갈증과 허기를 채우기 위해 헤매 다닐테지만 나는 들어본 적 없고 본 적 없는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여전히, 미지의 땅 위에서 오랫동안 그려온 고향의 향기를 실은 바람을 다시 마주한 듯한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매 순간이 내가 생에 부여받은 마지막 숨인 것처럼, 나는 가장 온전히 살아있기 위하여 지금 내 두 귀로 흘러들어오는 이 노래, 지금 내 두 눈동자를 가득히 물들여오는 이 풍경, 내 영혼에 속속들이 깃들어 나의 낮과 밤과 새벽을 전율케 하는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있는 힘껏 사랑하렵니다.

 

  • - 연시 8기 백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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