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센터] 4월 정기영화 상영

비관과 낙관이 공존하는 영역에서, 흔히 낙관의 가치는 더 높이 평가 받곤 합니다. 낙관이 주는 희망, 아름다움, 그리고 긍정과 같은 가치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행복과 유사하기 때문이겠지요. 실제로도 낙관주의에서 스며 나오는 힘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삶의 모든 순간에서 낙관을 추구해야 할 최선의 가치관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미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하여서는, 꼭 낙관주의만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든 행복이 충족되는 아름답고 낙관적인 이상향의 미래를 그린 유토피아적 세계관도 존재하지만, 그 대척점에는 암울하고 비관적이며 불행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Dystopia)적 세계관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영역이자 철학이겠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세계관을 고민하는 것 자체로도 그 의미는 충분해 보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특히,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 그 속에 녹아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여기 그러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잘 드러낸 영화들이 있습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칠드런 오브 맨』,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총 세 편 입니다. 세 영화는 많게는 100년, 적게는 30~40년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룹니다. 즉, 그 원인과 시기는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재앙 혹은 지구적 종말 이후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의 황폐화 이후 자원을 통제하는 소수가 지배하는 기술만 남은 원시적 세계를, 『칠드런 오브 맨』은 전 인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임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시점 이후 아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절망적 세계를,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는 고도화된 인공지능과 복제 인간의 출현 이후 인간의 존재와 감정이 위협받는 세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디스토피아적 요인은 모두 다르지만, 그 요인으로부터 파생되는 절망과 어두움은 표면적인 원인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세 영화 속의 세계는 대개 권력과 자원에 대한 인간적 갈등과 차별이 필연적으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서 비인간성, 우울함과 무력, 슬픔이 동반되어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가진 영화가 존재하며, 또한 이러한 관점을 가진 영화들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제가 비관주의 자체를 옹호하며, 절망을 선호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관과 절망만으로 점철된 영화는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음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최소한 저에게 있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의미 있는 존재인 이유는, 그 세계관 속에 역설적으로 가장 극적이며 아름다운 희망을 내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유토피아에서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은 단지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으며, 따라서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을 그리는 것에서 비롯된 박탈감을 자극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본래 단순히 이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지하고 그것과 멀리 있는 것을 소망할 때 가치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것이 달성할 가치가 있는 것일 때 더욱 그 크기는 커지는 것입니다.

결국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비관적인 미래를 그리면서도 그 속에서 분명한 희망을 담고 있는 관점입니다. 불행하고 우울한 미래를 상상하면서 단순히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든, 그 암울한 미래 속에서도 더 나아갈 방향을 희망하고 실제로 그 메시지를 느끼든, 저는 비관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고 믿으며, 또한 실제로 느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세 영화는 모두 디스토피아적 관점의 역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성과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뛰어난 연출들은 극한의 환경과 암울함 속에서 발생하고 드러나는 것이기에, 그 감동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 속에서 비관적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것은 우울하고 견디기 힘든 미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자세가 아니라,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준비해나가는 관점이며, 영원한 절망은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절망 없는 희망은 없으며, 비관은 단순한 절망과 다른 것입니다. 디스토피아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비관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비관적 세계입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드러낸 영화들을 보며, 무엇이 디스토피아를 만들었는지 관찰하고 절망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내포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희망을 느껴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연시 9기 경영학과 김동욱

April scre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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