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에서 썸타기를…

중도에서 썸타기를…

나에게 있어서 중도란 시험기간 급하게 벼락치기를 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설렜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몰랐겠지만, 중도는 ‘썸’ 타기 좋은 장소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만일 지금 이 순간 잘되고 싶은 이성이 있다면, 마음 편하게 같이 ‘중도에 가자’고 말하자.

처음 신입생으로 학교에 들어왔을 때, 첫눈에 반한 여자선배가 한 명 있었다. 운 좋게 같이 영화제작동아리에 들어가게 됐고, 자유롭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신병에 걸린 여자를 주제로 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다. 물론 그 역할을 꼭 그 선배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반나절을 고민하다 카톡으로 물어봤더니, 다행히 평소 털털한 성격인 선배는 바로 재밌겠다며 수락하였다. 난 선배에게 주인공의 캐릭터가 워낙에 특이하니,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같이 써보자고 중도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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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응답하라 1994 tvN 홈페이지)

처음부터 난관이 많았다. 입학하고 처음 중도에 간 터라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법을 몰랐다. 난처해하는 나를 대신해서 선배가 자리를 예약했다. 키오스크 사용법을 그 때 처음 배웠다. 자리에 앉았는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연세 Wifi를 접속하는 방법을 몰랐다. 대학 들어와서 구입한 노트북을 자랑스럽게 꺼냈지만, 막상 키고 나니 오피스도 없고 인터넷 접속도 안 되는 골칫덩어리였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어쩔 줄 몰라서 허둥댔다. 그때서야 선배가 Wifi에 접속하는 법과, 오피스 무료 대여 서비스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추억이지만 그 땐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선배와 같이 중도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매점에서 시원한 캔음료도 뽑아 마시고, 멀티미디어실에서 DVD를 찾아보며 어떤 컨셉을 하면 좋을지 회의했다. 원래는 나름 심오한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내 영화는 선배가 낸 코믹한 아이디어가 담긴 코믹영화 시나리오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뭐 코믹영화면 어떻겠는가. 그 시점에서 내게 중요한 건 이미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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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홈페이지)

이젠 다시 중도를 갈 때마다, 그 때 그 선배와 썸 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헌내기가 되어버린 지금은 중도는 내게 너무 익숙해진 장소다. 공강 때는 멀티미디어실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보기도 하고, ‘늘라온’에서 낮잠을 한숨 자고 수업에 다시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아직도 노트북 자리에 앉아서 밀린 과제를 해치울 때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볼 때면 다시 그 때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내게 중도는 두 개의 시간이 겹치는 장소다.

(사회 12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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