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미학 에세이: 예술의 눈으로 세상 읽기

지난 10월 31일, 독서토론 <진중권 미학 에세이: 예술의 눈으로 세상 읽기>가 열렸습니다. 토론에 도움을 주시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최세훈 대표님의 인사와 함께, 진중권씨의 미학에 관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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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전주의 미학에서는 예술을 자연의 모방이라 여겼습니다. 결국 예술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베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요. 단순히 베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자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눈에 보이는 자연보다 더 세세한 모방을 통해 미를 완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의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헬레나 상을 만들 기 위해 다섯 명의 모델을 사용했습니다. 한 명의 여성에게서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눈에 보이는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되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더 이상적인 미를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고전주의 미학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 고전주의 미학에서 예술은 자연의 결함을 수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현대의 시점에서 보면 고전주의 미학은 미(美)를 수학처럼 생각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반듯한 수학적, 기하학적 도형은 우리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무언가 일탈이 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 더 피어나곤 하죠. 고전미학은 항상 합리주의적 미학이고 인간의 수학적 질서에 맞추려 하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이었기에 이 일탈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고전의 사람들도 무언가 일탈이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죠(현재의 예술은 바로 그 일탈을 예술이라 가리키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고전주의 미학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고심했고, 이러한 고전미학의 극단을 달리는 것이 바로 근대 미학을 완성시킨 헤겔 미학입니다. 헤겔 미학은 우리가 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자연의 결함을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연미의 결함에서 예술미의 필연성을 찾아낸 것인데요. 이러한 자연미에 대한 인공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자세는 근대의 개발에 큰 뒷받침을 해주게 되죠. 결국 근대적 이데올로기에서는 좌파와 우파 모두 자연을 정복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자연은 자원의 보고’인데 그 결과물을 나누어 갖느냐, 사적으로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지요.

이 고전주의 미학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 바로 낭만주의 미학입니다. 낭만주의자는 자연적인 것을 평가하고, 인공적인 것에 대한 자연의 우위를 이야기하며 옛날로 돌아가자 주장합니다. 고전주의자가 예술을 장인(master)의 영역으로 본다면, 낭만주의자에게 예술은 천재(genius)의 영역입니다.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니 인공적일 수도 없습니다. 예술은 천재의 작품이기에 인공미가 전혀 없는 자연처럼 보여야 하지요. 고전주의 미학과 상반되는 시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관념의 대비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원 예술입니다. 먼저 프랑스와 영국의 정원 예술을 살펴보겠습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가 보신적이 있나요? 완벽한 기하학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베르사유의 정원은 자연이 인간의 이성에 의해 완벽하게 파악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반면 전 국민이 정원 가꾸기에 항상 힘쓰는 영국식 정원은 어떠한가요? 정원을 보고서 정원인지조차 잘 파악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가꾸어 진 곳이 바로 영국식 정원입니다. 그들은 자연을 볼 때 통제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크기와 힘에서 숭고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대비는 동양의, 일본과 한국의 정원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정원의 완벽함은 누구에게나 탄성을 자아냅니다. 마치 자연을 정복해 미니어처를 만들고자 한 것처럼 보이지요. 한국의 정원은 어떠한가요? 사람의 손이 닿았는지도 모르게, 인공적인 것 조차 자연에서 자라나온 것과 같은 모습을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죠. 이러한 태도는 한일 양국의 근대화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과거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던, 신작로를 만들어 수레를 끌고자 하는 일본인과 지게를 지고서 구불구불한 길을 가는 한국인을 비교해 놓은 에세이를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이것이 바로 한국이 일본에 비해 근대화에 뒤쳐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 이야기합니다. 한국인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는 근대화가 과제가 아니라 문제가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대화의 후유증, 특히 자연의 파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버렸지요. 이 때 진중권씨는 탈근대 미학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으로 한국 미학을 제시합니다. 자연을 인식론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일본의 모방(imitation)이 근대화에 유리했다면, 자연을 존재론적으로 닮으려 하는 한국식 모방(mimesis)은 탈근대에 유리하다는 것인데요. 한국의 전통적 건축 기법인 그랭이법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보통 건물을 지을 때 주춧돌은 자연석을 사용하는데, 자연석과 인공석이 만나는 지점에서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이 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석을 평평하게 깎아버리는 것이지만 그랭이법은 이럴 때 인공석을 자연석에 맞게 깎아 주는 것입니다. 자연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너무나 명확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지요. 이 그랭이법은 꽉 맞물린 기능적 우수함과 자연을 우선시하는 예술 의지를 드러내주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뛰어난 기교 및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탈근대 시대에는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자연으로 순응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테크놀로지는 그랭이법의 경우처럼 자연을 정복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형태의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처럼 단순히 거부하는 것으로는 테크놀로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테크놀로지가 변화해야 할까요? 진중권씨는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먼저, 산업 사회에서의 상수가 기계였던 것이 정보 사회에서는 상수가 인간으로 맞춰집니다. 상수가 기계일 때에는 기계에 인간을 맞추는 것이 기본이고, 인간의 문화 중 가장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문화인 군사 문화가 전 세계에 다양하게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이 상수가 되면 기계의 사용을 인간의 자연적 신체에 맞추게 됩니다. 인간이 기계를 사용한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테크놀로지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Ford사의 시스템과 최근의 HCI를 비교해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다음으로는 자연에 대한 Mimetic technology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이 테크놀로지는 단순한 인공적 규칙에 따른 움직임이 아닙니다. 연꽃에 물이 떨어지면 한데 모여 또르르 굴러가는 것을 모방해 후라이팬에 기름을 따를 때 또르르 돌아다니게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벌의 비행을 모방하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수레와 같은 전통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모두 주체라 생각했던, 자연을 경외하던 과거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에서는 인간만이 주체일 뿐 자연은 객체라 생각해 착취하기에 급급했지요. 이제 우리는 자연을 인정하고 대화 상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근대 이전에 가졌던 자연에 대한 존중과 근대 시대에 가진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 맺음이 필요하겠지요. 여기에 큰 실마리가 되어 주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미의식이고, 탈 근대에 아주 귀중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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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고 가졌던 질의응답 시간에는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양하고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그 중 몇 가지만을 선별해서 소개합니다.

Q.  숭례문 복원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요즘입니다. 숭례문을 현대 기술로 다시 복원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우리나라의 전통적 건물들은 목조 건물이기에 다시 짓는 일이 많습니다. 신라시대의 건축물을 고려시대에 다시 중건한 것들도 많죠. 이 때 중요한 것은 처음 지었을 당시의 양식이 살아있느냐는 것입니다. 숭례문도 지금은 아직 시간의 아우라가 쌓이지 않았지만 곧 생겨날 것이고, 조선시대의 양식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지어질 일반적 건축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복원 과정에서 당시의 기술을 사용하고 복원하려고 하는 그 과정, 그 양식의 재현, 그런 것들이 정말 중요해요.

 

Q.  일을 할 때, 감성과 자연주의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요?

A.  우리는 이미 개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개발을 없애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가능한 한 환경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개발을 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 효율성의 경우에는 앞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삼성과 애플의 패러다임이 충돌하는 것과 같이, 이제부터 경쟁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경쟁이지 기술력의 경쟁이 아닙니다. 컨텐츠와 삶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양화된 가치의 평가 방법과는 다른 평가 방법을 다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Q.  탈근대 해법으로서의 단초를 동양미에서 찾을 수 있다 하시면서 이것의 예를 문화유산에서 많이 들어주셨습니다. 동양미가 유산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여전히 한국에서 공유되고 있는 가치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 한국이 전통이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네요.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칭하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의 모든 것이 다 한국적인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는 한국인들을 구분해 낼 수 있죠. 그것이 바로 한국적인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통의 중요성입니다. 일본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루어 내었기에 전통이 살아있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끊어진 전통의 맥락을 잇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겠죠. 전통 문화로 환원시키자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전통 문화를 되살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Q.  탈근대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진보적인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전파한다며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돈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모든 것이 평준화 되면서 사람들은 평준화되지 않은 부분을 못 견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이 심해 지는 것이고요. 저는 이것에 대처하기 위해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를 결합시키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포스트모던이고, 엘리트와 대중을 같이 만족시키는 전략입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지식인과 일반인들을 모두 즐겁게 해 주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Q.  최근 신촌에서 이루어지는 공사를 통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근대적 인공물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자연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자연이 가진 숭고미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A.  콘크리트도 보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공의 자연화인데, 인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체가 아우라가 생기고 제 2의 자연이 되는 것입니다. 북촌의 아름다운 골목길을 생각해 보세요. 보존이 필요한 것들이 있지요.

 

Q.  인간의 상상력과 인간성이 중심이 된다고 하는데요. 탈근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산업화 시대의 교육을 받은 순응적 사람들에게도 있다고 보십니까?

A.  공부를 잘 하느냐와 창의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욕망을 싼 값에 만족시키는 것이 레드오션이고, 존재하지 않는 욕망을 만들어서 욕망하게 만드는 것이 블루오션입니다. 두 가지 경쟁은 차원이 다르죠. 레드오션은 기술력 경쟁이고 블루오션은 상상력 경쟁입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최고(best)가 되기 위한 경쟁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기에 앞으로 독특(unique)한 사람이 탄생해야 하는 경쟁과는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순응적이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도 나올 수 있어요!

 

두 시간 반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갖추어야 할 미학과 우리의 태도에 대한 학생 여러분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번 토론으로 시작으로 연세인에게도 근대적 사고를 벗어난, 자연의 숭고미를 느끼고 존중하는 태도가 퍼져 나갈지, 기대됩니다.

- 문헌정보학과 4학년 백은영 (학술정보원 인턴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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