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속 박물관 기행(5) – 보물 745-4호 월인석보(月印釋譜) 卷13-14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이런 제목들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초기 한글 작품 세트죠.^^ 이 작품들에는 막 창제된 훈민정음의 앳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전설 같은 작품 중 하나의 실물이 우리 학술정보원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월인석보』는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편찬한 『석보상절』을 합하여 편집한 책입니다.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세상을 뜨자 세종대왕은 왕후를 추도하기 위해 당시 수양대군에게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편찬하도록 했습니다. 수양대군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승우(僧祐)의 『석가보(釋迦譜)』와 도선(道宣)의 『석씨보(釋氏譜)』를 합하여 『석보상절』을 편찬하여 1447년 세종대왕에게 올렸고, 세종대왕이 이를 보고 친히 국한문 악장체의 노래를 지어 주었으니 이것이 『월인천강지곡』입니다. 그 후 세조가 즉위하여 3년째 되던 해에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세상을 뜨자, 세조는 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손수 『월인석보』를 편찬하였는데 먹는 것, 잠자는 것도 잊고 이 일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세자를 추도하기 위한 것이 편찬 동기였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롭지 않은 과정을 거쳐 집권한 세조가 『월인석보』의 편찬을 통해 아버지 세종대왕의 업적을 계승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왕위의 정통성을 널리 알리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201311_rb_all 

『월인석보』는 세조 5년(1459)경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판본과 16세기 각 지방 사찰에서 분산되어 번각(飜刻)된 중간본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25권으로 추정되는 분량 중에서 초간본은 19권 정도가 전해지며 중간본을 모두 합해도 전질이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학술정보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월인석보』는 초간본으로 권13-14의 2권 2책이 있고, 중간본으로 권21, 권23이 있습니다. 이 중 초간본 권13-14는 1983년 보물 745-4호로 지정되기도 하였지요.^-^ 초간본 권13에는 『월인천강지곡』의 제281곡의 일부와 제282곡이 실려 있고, 『석보상절』의 해당 부분이 뒤를 잇고 있는데 그 내용은 국역된 『묘법연화경』의 「신해품(信解品)」, 「약초유품(藥草喩品)」, 「수기품(授記品)」에 해당됩니다. 권14에는 『월인천강지곡』의 283-293곡이 잇달아 나오고, 뒤이은 『석보상절』 부분에는 『묘법연화경』의 「화성유품(化城喩品)」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월인천강지곡』은 3권 중 1권밖에 전해지지 않고, 『석보상절』도 전체 24권 중 일부밖에 전해지지 않는데, 이 『월인석보』를 통해 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월인석보』는 서두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용비어천가』, 『훈민정음』,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을 잇는 한글 창제 초창기의 자료로서, 표기법, 어휘, 음운, 글자체 등 다방면에서 국어사 연구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한 문헌입니다. 『월인천강지곡』에서는 한자 표기에서 한글이 한자보다 앞서 나오던 것이 『월인석보』에서는 그 위치가 바뀌었으며, 한자음에 종성 받침으로 ‘ㆁ’을 사용하는 등 표기법의 변화도 보이고 있고, 전체적으로는 앞음절의 받침을 뒷음절의 모음에 이어 쓰는 연철법(連綴法)이 사용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음절 단위로 끊어서 표기하는 분철법(分綴法)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반포(1446) 이후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변화된 국어의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연세소식 427호에서 발췌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HTML tags are not allow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