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속 박물관 기행(4) – 조선시대 천문 관측 기록 관상감등록(觀象監謄錄)

201310_rb2올 추석, 보름달은 보셨나요? 우리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이면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는 하죠. 달나라에는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우주선을 타고 달을 오가는 지금도 여전히 이 풍습이 남아 있는 걸 보면 하늘을 숭배하는 우리의 전통은 꽤 뿌리깊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사상은 예전에는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관청을 두고 천문을 관측하게 했다고 합니다. 관상감에서는 3명의 관원이 교대로 근무하였고, 관측한 내용을 ‘측후단자(測候單子)’라 불리는 문서에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객성이나 혜성, 패성 등의 성변이 나타나게 되면 바로 임금에게 보고하고, 문신 중 몇 명을 뽑아 문신측후관으로 임명하여 함께 성변을 관측하게 하였습니다. 성변은 국내외의 변고나 변란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성변에 대한 관측은 성변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매일 별의 모양, 색, 고리의 자취 등을 모두 기록하여 보고하고 단자 끝에는 그 날 측후에 관여한 관원들의 이름을 나열하게 하였습니다. 성변에 대한 측후기록은 ‘성변측후단자’라 하고, 이를 책으로 묶어 보관한 문서는 ‘성변등록(星變謄錄)’, 또는 ‘객성등록(客星謄錄)’이라고 합니다. 매일의 측후단자는 승정원과 규장각에 보고되어 그 내용이 승정원일기, 왕조실록 등에서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지만 측후단자만큼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측후단자는 안타깝게도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하네요…ㅡ.ㅜ

측후단자에 대한 언급은 일본인 천문학자 和田雄治의 보고서 『朝鮮古代觀測記錄調査報告(1917)』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한일합방으로 관상감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들은 和田雄治가 관상감에 보관되던 자료들을 그가 근무하고 있던 인천의 관측소로 보내달라고 했으나 그에게 전달된 것은 좀먹고, 비에 젖고, 파손된 종이 뭉치뿐이었답니다. 그런데 이 자료들을 버리지 않고 세심히 살펴본 결과, 그 속에서 8종의 성변등록을 발견하였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얘기된 8종은 顯宗 2년(1661), 顯宗 5년(1664), 顯宗 9년(1668), 肅宗 21년(1695), 肅宗 28년(1702), 景宗 3년(1723), 英祖 35년(1759)의 3월과 12월에 나타난 성변에 대한 기록입니다. 和田雄治는 같은 보고서에 현종 5년의 측후단자 사진 한 장을 실었고, 같은 해의 자료가 연희전문학교에서 천문학을 강의했던 W. C. Rufus의 『Korean Astronomy(1936)』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성변등록의 소재가 묘연해져서 인천 관측소 화재 시 소실되었거나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던 중 1978년 초, 사라졌던 성변등록의 일부가 천안 지방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현재는 우리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01310_rb3이는 和田雄治가 발견했던 자료 중 일부인 경종 3년과 영조 35년의 기록 3종으로, 이 중 영조 35년 3월의 기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핼리 혜성에 관한 것입니다. 1759년의 핼리 혜성 회귀 때의 기록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和田雄治의 소장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과거 소개되었던 내용과는 달리 책 외형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누군가 새로 제본을 하면서 아래위의 여백을 심하게 잘라 글씨 일부가 잘린 부분도 있고, 손이 많이 닿는 부분은 마모가 되어 판독이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중요한 자료가 훼손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라졌던 자료를 그나마라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바로 우리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다니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 연세소식 425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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